좋은 결과는 내 덕분, 나쁜 결과는 네 탓?
이런 말 속엔 스스로를 망치는 치명적인 착각이 숨어 있습니다.
결과가 나쁘면 ‘핑계’, 좋으면 ‘내 공’?
사람들은 결과가 나쁘면 핑계를 댑니다. “그건 내 뜻이 아니었어”, “그땐 다들 그랬지”, “이건 네가 하자고 한 거잖아.” 자신을 방어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말들입니다.
진짜 자아 보호는 다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겉모습을 지키려는 것을 ‘자아 보호’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자기 기만일 뿐입니다.
진짜 자아 보호란?
어설픈 가짜 나를 드러내어, 그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그 잘못이 다시는 나에게서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행동은 내가 아니라 ‘나와 무관한 쓰레기’입니다.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보호가 아니라 훼손이고 죽이기입니다.
자존감이란 ‘완전한 나’를 향한 충실함
진짜 자존감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하며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스스로를 비하하고 망치는 태도일 뿐이죠.
- 나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존재가 아니야.
- 나는 완전한 존재로 창조되었고, 그 본질로 살아야 해.
- 그러니 잘못을 지켜낼 것이 아니라, 철저히 교정해서 완전한 나로 복귀해야 해.
가짜 자아 방호는 자존감이 아니라 자기 비하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사실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는 원래 부족한 사람이고, 그냥 이 정도 수준에서 살아갈 거야.”
그것은 자존감이 아니라 무기력한 자포자기입니다.
이런 ‘핑계의 루프’는 결국 진짜 나를 망각하게 만들고, 멍청한 반복을 계속하도록 조장합니다.
진짜 나를 회복하는 3가지 방법
- 내가 저지른 잘못 자체는 나의 정체가 아니다.
쓰레기는 드러내고 치우는 것이지 지켜낼 대상이 아니다. - 핑계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거짓된 나로 고정시키고 죽이는 독입니다. - 자존감은 ‘완전한 나’에 충실한 삶에서 온다.
그래서 나는 잘못을 핑계 없이 정면으로 보고, 교정하기로 결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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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당신에게: 연합을 망치는 건 실수보다 무책임이다.”
실수보다 더 위험한 건, 반복되는 무책임입니다. 핑계는 그 무책임을 고착화시킵니다.
마무리하며
핑계는 자존감이 아닙니다.
진짜 자아는 쓰레기를 인정하고 버릴 줄 아는 용기에서 살아납니다.
‘내가 이 정도야’가 아니라,
‘나는 절대로 이런 존재가 아니야’라고 선언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 당신을 진짜로 지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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