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를 보지 못한 자의 확신 — 경험이 착각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이걸 겪어봤기 때문에 알아.” “나는 본 대로 말하는 거야.” “나는 확신해. 분명 그랬어.”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확신은 정말 진리에서 온 것일까요? 아니면, 오직 자신의 부분적 경험에서 비롯된 착각</strong일까요?
❶ 나는 전체를 알 수 없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조각만을 알고 있습니다. 내게는 과거도, 미래도 온전히 보이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조차 내 기준으로만 해석할 뿐입니다.
앞, 뒤, 위, 아래, 옆 — 나는 모든 방향을 동시에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본 단편을 가지고 전체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❷ 경험은 나의 해석이지, 곧 진리는 아니다
내가 겪은 것도 사실은 '해석된 기억'입니다. 나의 관점, 나의 감정, 나의 한계가 뒤섞인 복합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절대화합니다. “나는 이렇게 느꼈으니까, 그게 진실이야.” 하지만 이 말은 이렇게 바꿔야 맞습니다. “나는 이렇게 느꼈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어.”
❸ 전체를 보지 못하면, 부분도 왜곡된다
퍼즐 한 조각만으로 전체 그림을 단정하는 자는 반드시 실수합니다. 왜냐하면 부분은 전체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본 장면이 누군가의 인생 전체가 아니고, 내가 들은 말이 진심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겪은 사건이 진리의 전모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부분을 전체처럼 다루는 순간, 진실에서 멀어집니다.
❹ 진짜 어리석음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
내가 전체를 알지 못하면서도 확신하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확신이 아니라 교만이고 오만</strong입니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안다고 믿는 자는, 결국 진리가 아닌 자기 확신 속에 갇힌다.
✅ 마무리: 전체를 보지 못하는 자는 조용해야 한다
나는 전체를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도 사실 왜곡된 부분일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판단하기 전에, 해석하기 전에, 주장하기 전에 먼저 조용해지고, 멈추고, 전체 앞에 서야 한다.
진리는 전체다. 그 전체는 나보다 크며, 내가 침묵할 때, 그분의 시선이 내 안에 비로소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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